The Cross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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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단순한 것들!
by 절름발이


무용한 대화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http://blog.naver.com/tb/paxwonik/40116875549

아이추판다라는 블로거는 분과 학문에 대한 "제도적" 구분들이 진리 체계의 경계를 확정한다고 믿는다. 근대의 역사적인 산물인 이러한 학제 시스템이 어떻게 사후적으로 생겨났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되레 이를 가지고 여러 진리의 체계들을 구획하는 전도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라캉주의를 끊임없이 철학이나 문화연구로부터 구분해내는 한편, 그것을 심리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카테고리로 줄기차게 소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철학이나 문화연구에서 인용되는 라캉이 심리학과는 별 관계없다는 박가분의 발언에 급기야 "심리학은 모든 것을 탐구하는 조낸 지존 학문이거든?"이라는 드립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박가분은 스스로 아이추판다가 제기한 아카데믹한 학제적 구분 놀이에 얽여들어감으로써 좋은 빌미를 제공한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아이추판다가 심리학을 정의한 그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이 저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면, 이 양반에게 문제는 단순히 라캉만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라캉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든지 심리학과 겹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이때 라캉의 교의는 독단적으로만 제시될 뿐 심리학적으로는 잘못되었거나 적어도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이 라캉의 활용을 무죄라고 하는 이유는 단지 심리학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일 뿐이다."

위의 구절을 보면, 우리는 여기서 라캉을 다른 철학자나 인문학자들로 대체해도 통용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소크라테스, 칸트, 헤겔, 사르트르 등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든지 심리학과 겹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왜냐하면 이들 역시 심리학처럼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아이추판다가 라캉(혹은 다른 누구라도)이 철학이나 문화비평 등 어떠한 맥락에서 인용되든지간에 그것을 동일하게 자신의 경험적 지평 내로 환원하여 달려드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러니까 아이추판다는 사실 과학이라는 "어떤" 창조 행위의 우위를 주장함으로써 근본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신념은 "새로운 인문학"을 주장한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에게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통섭이란 게 결국은 인문학의 사회생물학에의 복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통섭이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적 산물이자 사기이다. 인문학과 과학의 대화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하며, 양자가 어떤 소통을 한다면 서로 얼마나 다르고 또 독특한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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